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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4시,
서울역에서 기적이 시작됩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역에서 기적이 시작됩니다.

무료급식소 : 3만 명의 ‘존엄한 한끼’를 지켜온 구재영 목사의 이야기

무료급식소 : 3만 명의 ‘존엄한 한끼’를 지켜온 구재영 목사의 이야기

2025.01.09

2025.01.09


 

Editor 햇살한줌
[마음 온(溫)에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로 마주하는 우리 주변의 진실, 따뜻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사랑입니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의 이 대사처럼, 구재영 목사는 매일 새벽 사랑이 담긴 한 끼를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바베트의 만찬》 - ⓒ에이나인

새벽 3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서울역 주변. 구재영 목사의 발걸음은 무거울 법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무료급식소 시설장 구재영 목사

"매일 아침이 새로운 도전이에요. 하지만 이분들께 아침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죠."

'존엄한 한 끼'를 꿈꾸는 사람


"무료급식소 이전부터 점심 도시락 봉사를 하면서 한 끼 식사가 가진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구 목사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구재영 목사의 아침 환대 모습

"아침식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들, 생존을 위해 한 끼가 절실한 사람들을 지켜보며 따뜻한 한 끼가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024년 7월, 이랜드복지재단이 설립한 서울역 무료급식소는 그의 확신을 현실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개소 이후 현재까지 3만여 명에게 '존엄한 한 끼'를 제공하며 희망의 식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랜드 서울역 무료급식소 전경

편견을 깨는 시간


"처음에는 저도 편견이 있었어요. '이분은 노숙하시는 분이니까 밥이나 물건으로 도와드리면 충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있었습니다."

구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무료급식소 이용자와 대화하는 구재영 목사

"이분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오시는 게 아니에요. 식사 후에도 자리에 앉아 봉사자들을 바라보거나, 한마디 말이라도 걸어주길 눈빛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분들 가슴이 공허해서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끝내는 자신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기적은 일상이 된다


매일 아침, 급식소로 들어오는 이들을 맞이하며 구 목사는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무료급식소 이용자와 대화하는 구재영 목사

봉사자들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합니다.

"'당신은 소중한 분이다. 동정이나 연민으로 밥을 드리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에요."

이런 진심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갔습니다. 뇌수술 후 일자리를 잃고 쪽방에서 지내던 김용일(가명, 58세) 씨는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시작하며 건강을 되찾았고, 새 일자리도 구했습니다. 첫 월급의 일부를 후원금으로 내며 그는 말했습니다.


 

김용일 씨의 후원금

"누군가에겐 한 끼 식사가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낳는다


우연한 방문이 정기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새벽 4시, 인천공항에서 일정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 들른 SM코리아 김경미 대표는 이제 매달 정기후원은 물론 물품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쌀 320kg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봉사자도 있습니다.


 

이랜드 서울역 무료급식소 제공 식사

"'밥 한 끼로 누군가의 하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이런 게 기적 아닐까요?"

새로운 도전


하루 평균 300명. 처음 150명이었던 이용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방이 협소해 어려움도 있지만, 구 목사의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기만 합니다.


 

"100% 후원과 자원봉사로 운영되다 보니 의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납니다. 끝이 없을 것 같지만 분명히 끝이 있어요. 희망의 빛이 있음을 느낍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하루 일과를 마치는 구 목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나누는 이 작은 온기 속에 있습니다."

구재영 목사는 환하게 웃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웃음이었습니다.